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문단 편집) == [[베트남 전쟁]]과의 비교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128428#home|"사이공보다 치욕" 美 20년 아프간 전쟁 이렇게 끝났다]] 이 전쟁을 [[베트남 전쟁]]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다. 베트남은 [[통킹만 사건]], 아프간은 9.11 테러로 전자는 거의 조작된 사건이라 피해는 당연히 후자가 더 크지만 어찌됐건 미국이 공격받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한 점. 그리고 베트남은 북진금지, 아프간은 과도하게 부족한 병력이라는 제한조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사상자.[* 아프간에서 발생한 전사자가 3,600여 명인 점을 들어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가장 많을 때도 총병력이 10만명이 될까말까하던, 그나마도 대부분의 기간 병력이 2~3만에 불과했던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반면 베트남전 당시 투입된 병력은 최대규모가 54만 명이었고 총인원은 300만에 달했다. 그 중에 전사자가 58,000명이다. 만일 베트남전도 미군이 많아야 10만. 평소 3만정도 유지하는 식이었으면 전사자는 수천명에 불과했을 것이다.] 무능을 넘어 매국노들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형편없는 현지 정부와 적군에게 무기를 돈받고 팔아넘기는 군대. 전술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승리를 할 수 없는 현실. 결국 미국이 견디다 못해 발을 빼자 급격하게 붕괴된 국가와 붕괴중인 국가 등 여러면에서 일치한다. 그리고 베트남전도 출구전략 직전 [[라인배커 작전]]으로 북베트남을 폭격하여 전쟁수행여력을 크게 깎아먹어서 그나마 남베트남의 수명을 2년 연장시켜 줬듯이 아프간전도 철군 한달전 대규모 폭격으로 결말이 뻔하지만 아프간 정부의 수명을 일단은 연장시켜주려고 하는 것 또한 비슷하다.[* 다만 미군 폭격으로 크게 줄어든 북베트남군을 막아내기는 한 남베트남군과 달리, 아프간군은 그냥 붕괴되고 있어서 효과가 전혀 없다는 점은 차이다. 물론 탈레반의 피해가 예상보다 커지기는 했지만 1만 명 죽어나갈 게 2만 명 죽어나가는 정도로 전의가 꺾였으면 20년간 전쟁을 이어가지도 못했다.] 명분만 놓고 보면 이슬람 극단주의로부터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평가받는 등 베트남 전쟁보다야 훨씬 낫다. 당시 베트남 전쟁의 무용성을 비판하는 것은 서구 사회에서 하나의 문화 트렌드가 되었고, 당시 일어난 반전 여론은 미국의 [[히피]] 문화 및 유럽의 [[68 혁명]]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부도덕한 전쟁으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특히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는 초등교육 인프라가 대대적으로 개선, 확장되었고 21%대 수준에 불과했던 초등학교 취학률이 통계상으로는 97% 정도로 증가하였다. 만약에 미국이 과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에 대해 계속 경제제재만 하고 팔짱만 끼고 있었다면 인권문제 관련하여 심각한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https://www.ddanzi.com/ddanziNews/611214|#]][* 9.11 테러 4개월 전 작성된 딴지일보 기사 링크. 탈레반 정권 당시 비참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함과 동시에 [[바미안 석불]] 파괴에 경제제재만 하고 팔짱만 꼈던 미국을 비판하는, 평소 딴지일보답지 않은 제대로 균형잡힌 기사이다.] 비교하자면 [[팔레비 왕조]] 시절 이루어진 여성 인권 신장 결과 [[이란 혁명]] 이후 수립된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서 대놓고 여성의 교육권을 박탈하지 못했던 사례[* 호메이니 살아생전 여성 전문직 상당수가 직장에서 쫓겨났지만 호메이니 사후 상당수는 원래 직장에 복귀할 권리를 되찾았다.]와 마찬가지로, 미군 주둔 기간동안 일어난 아프가니스탄의 교육 인프라 개선 및 여성 교육 증대 덕분에 이번에 재집권한 탈레반은 과거와 같은 극악한 폭정을 반복하기 힘든 상황이다. 과거와 같은 수준으로 극악한 여성 인권 탄압과 우민화 교육을 그대로 시행했다가는 국민들의 반발이 훨씬 더 거세진다. 반대로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심지어 [[스웨덴]]마저 공개적으로 북베트남을 지지했을 정도로 미국은 도덕적 명분에서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전쟁 전개 및 결과를 놓고 보면 __기초적인 공군력조차 전혀 갖추지 못한 테러리스트 민병대에게 패전__했기 때문에 더 수치스러운 패배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베트남 전쟁보다 더 수치스러운 패배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베트남 전쟁]]은 당시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소련, 중공으로부터 이런저런 지원을 받고 싸운 경우라 변명이라도 조금 할 수 있었겠지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은 막장 테러리스트 집단이라 아무도 지원을 안 해주는 상황인데도 미군이 전쟁에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어쨌든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남베트남 정권보다는 확실히 더 넓고 강한 지지기반이 있었다. 게다가 [[베트남군]]이나 [[케산 전투]] 같은 베트남전쟁 시기 내 직접 군사사를 살펴보면 알수 있는 일이지만, 사실 북베트남-베트콩이 순수하게 게릴라전으로만 이긴것도 아니다. 미국-남베트남과 비교하기는 힘들어도 중소의 적극적 지원 아래 나름 튼실한 포병, 방공, 항공 자산도 갖추고 있었고, 승산이 있어 보일때는 대규모 전면 회전도 종종 벌였으며 특히 디엔비엔푸 시절부터 갈고 닦은 '''땅굴 은신, 신속 배치, 방열, 사격, 분해, 퇴각''' 기습 포격 실력을 갈고닦은 월맹 포병전력은 미국도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을 만큼 북베트남-베트콩은 국가간 정규전에도 튼튼하게 대비했고, 실제로 그럴 역량도 있었다. 반면 탈레반은 당시 북베트남 수준의 국민적 지지, 정치적 통합, 외부 지원, 미국과는 비교 안되지만 그래도 나름 튼실한 현대전 자산 이딴거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초창기 탈레반의 토대가 된 [[헤크마티아르]] 군벌 등을 지원했던 국가는 러시아가 아닌 바로 미국 그 자신이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및 ISI를 통해서 제한적인 왜곡된 정보만을 입수할 수 있었고, 미국의 무기와 자금 지원은 무자헤딘 중에서도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 그룹으로 향했다. 정작 당시 가장 혁혁한 전공을 세운데다가 온건파였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영어를 못하는 대신 프랑스어를 구사했는데, 미국의 정보통들은 프랑스어 통역하기가 번거로우니까 영어 못하는 사람은 필요가 없다고(…) 그에 대한 정보를 대충 누락시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국제외교에서 프랑스어가 가진 엄청난 비중을 생각해본다면...] 물론 개전 초반에 미군 본대의 우월한 화력, 기갑과 공중우세력을 토대로 탈레반과 알카에다 지도부를 비롯 상당수 세력을 일소한 것은 사실이며, 지지부진한 수색 끝에 개전 10년만에 빈 라덴을 사살하면서 미군이 목표로 하던 목적은 달성하는 것에 성공했다. 다만 머리가 잘린 탈레반은 점조직화하며 세대를 거쳐 가장 뿌리뽑기 힘든 마약 군벌연합과 같은 형태를 띄게 되었고, 이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미군이 어떻게 손을 쓰기엔 적절치 못한 판도가 되어 의미없는 주둔군 사상자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아프간 정부는 남베트남과는 달리 미군 주력이 철수한 이후 그렇게 지원받은 자본과 군사자산에도 불구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얼마나 빨리 멸망했는가 하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던 미군, 미국인, 영주권자들, 미국이 탈출시켜야만 했던 미군에 협력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철수가 완료되기도 전에 멸망해버렸다. 결국 미국은 철수를 위해 새로 아프간의 주인이 된 탈레반에게 철수 협조를 받아야 했다.] 베트남 전쟁보다 더 끔찍한 패배라는 것이 중론이다. >“AK-47 소총, 로켓추진수류탄, 지뢰로 무장한 반군에게 패배한 역사상 가장 거대한 첨단 동맹[* 영국과 미국을 뜻한다.]”- 토비아스 엘우드 영국 하원 국방위원장 때문에 [[미국]]을 도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영국]]내부에서도 이번 아프가니스탄 패배를 치욕과 수치로 평가하고 있는데 베트남전쟁과 비교해서 미국은 엄청난 재정 투자를 기반으로 발전을 거듭 [[걸프전]]을 통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자타의 공인을 받는 최첨단 군사자산들을 자랑하는 군대였다. 그런 최첨단 군대가 과거 베트남전때와 별반 달라진게 없는 한심한 무장 수준의 반군을 제대로 섬멸하지도 못한 채 내몰리고 스스로는 빠져나가지도 못해서 마지못해 협상을 해가면서 쫓겨난 셈이다. '''그것도 배운게 전혀 없다.''' 진짜 과거 그 베트남 전쟁 시절때는 아예 베트남전 같은 비대칭, 비정규, 무장봉기적 전쟁(asymmeterical, irregular, insurrectionary)을 싸우는 법에 대한 메뉴얼 자체가 없었다 쳐도[* 사실 없기는 뭐가 없을까 게릴라전은 고대부터 인간이 싸워온 전쟁의 형태이고, 소련 같은 공산권이나 전세계의 피식민지 독립운동 세력들 뿐만 아니라 이들을 진압해야 하는 입장에 있었던 대영제국 같은 경우는 이미 세계대전 시절부터 비정규전, 비정규전진압전 매뉴얼을 개발하고 있었다. 건국 이후 1812년 영미전쟁, 남북전쟁 빼고는 세계대전 이전까진 애초에 비슷한 체급, 기술력에 진지하게 싸워야할 상대 자체가 없었던 미국 특유의 역사적 오만함이 부른 참사라고 밖에 할수 없다.] 21세기에는 당장 미군 본인들부터 웨스트포인트에서 심지어 옛날엔 적으로 총부리까지 돌리던 전직 베트콩이나 월맹군 교범까지 번역, 공부하던 시절이다. 당장 민간 밀덕계에 풀린 자료만 봐도 21세기에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비정규전, 게릴라전, 정치전략전 메뉴얼이 나와 있는 상태인데 전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브레인들이 다 몰려와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 받으면서 일한다는 나라에서 이 풍부한 자료, 고급 양질의 훈련 체계가지고 도대체 뭘 어떻게하면 50년전 베트남전 당시보다도 더 개허접한 중세적 광신도 민병대 상대로 패전을 하나??? 이러한 총체적 난국에 대해 영국 하원 국방위원장이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패배에 대해 “이것은 기념비적인 전략적 오류이며 역사는 우리를 가혹하게 심판할 것”[[https://m.kmib.co.kr/view.asp?arcid=0016171614|#]] 이라고 한탄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미군에 협조한 [[몽족]] 상당수를 버려두고 [[이라크 내전]]에서 IS토벌에 앞장선 쿠르드족들을 배신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은 자신들에게 그나마 적극적으로 협력한 [[하자라족]]들을 대부분 방치한 상태로 철수하였다. 하자라족들은 이미 탈레반 정권 시절 심각한 박해로 인구 상당수가 이란이나 파키스탄으로 망명한 전력이 있으며,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 내내 탈레반의 주요 테러 타깃이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남은 하자라인들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정리하자면 1. 북베트남-베트콩은 소련과 중국이란 양대 강대국에게 엄청난 물자 지원을 받은 반면 탈레반은 파키스탄 정부 내 부정부패를 통한 지원 빼곤 외부 지원도 거의 없었다. 1. 미국 자국만 빼곤 심지어 서방권 내에서도 방금 해방정국과 6.25 전쟁 당시 공산주의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교조적인 반공 사상이 있는데다[* 1990년대 이전에는 공산 정권이 수립된 국가와의 수교 자체가 없을 정도였다.] 남베트남에 대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었던 한국 빼고는 전부 버림받았고[* 남베트남에 주둔했던 제1세계 군대 중에서 남베트남에서 마지막에 철수한 군대가 바로 한국군이었다.], 심지어 미국 자국 내에서도 결국 반전여론이 주전파를 넘게된 베트남과 달리, 탈레반은 전세계에 메이저 정치 세력, 국가 치고 아무도 옹호하지 않았다. 심지어 반미권도 어쨋든 침략자인 미국이 더 나쁘다는 논조를 폈지, 중세적 광신도 부족연합체인 탈레반을 정의의 투사로 치켜세우는건 거의 없었다. 1. 북베트남은 적어도 자국 내에서는 확실하게 범국민적 지지를 받았고[* 공산주의 국가니깐 그냥 때려 패서 강제 통합한거 아니냐 반문할수 있겠으나 이건 MACV-SOG 같은 특수전 스페셜리스트들과 베트남 내 소수민족까지 동원해 심혈을 기울였으나 실패했던 미국의 북베트남 내 공작 노력을 무시하는 관점이다.], 60년대 동시대 낭만주의적 좌익 민족주의 사관에 대한 역풍이 많이 분 지금도 남베트남 내에서도 적어도 베트콩은 수만 규모의 국가 내 국가 역량을 유지할만큼의 민중적 지지는 받았다는 점은 부정할수 없다. 반면 탈레반은 당장 자국인 아프가니스탄 내에서도 싫어하고 근본적으로 타협하기 힘든 적대 세력이 엄청 많았으며, 이들은 미국에 열심히 협력했다. 1. 베트남전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발전한 정보자산, 군사 기술, 베트남전에서 배웠던 대게릴라 진압전 (Counter-insurgency)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네가지 요소만 봐도 북베트남-베트콩에 비해 훨씬 더 초라하고 미약한, 아니 초라하고 미약'''했어야 했을''' 적인 탈레반 상대로 이렇게 사이공 1975 어게인을 찍고 쫒겨 나는 꼴을 보면 미국 입장에선 아무리 봐도 베트남보다도 더 굴욕적인 패배이다. 반면 미국 국민들에게 다가오는 충격은 베트남 전쟁보다는 훨씬 덜한 편이다. 베트남 전쟁 시기와는 달리 징집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참전한 군인 군인 수도 베트남 전쟁에 비해 훨씬 적으며 5만여명의 전사자가 나온 베트남 전쟁에 비해 전사자 수도 2,420명으로 훨씬 적고, 미국 관점에선 제한전이라 어쨌든 국내에는 피해가 덜했기 때문이다. 또한 2020년대에는 이미 미국 내에서도 자국의 패권주의와 세계경찰로서 능력에 대해 좌우파 가리지 않고 비판적인 성찰이 우세한 것도 영향을 끼친다. 이미 베트남 전쟁과 마찬가지라는 기시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나마 현실을 받아들이는 면에선 연착륙이 가능했다. 결국 [[베트남 전쟁]]에 이어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패하면서 아무리 [[미국]]이라도 일방적으로 전쟁을 한들 좋은 성과가 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 다시 증명됐으며, 아프가니스탄은 베트남과 더불어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진 강대국이라 한들 자국을 함부로 공격했다간 뼈아픈 패배만을 맛보는 '''"[[제국의 무덤]]"'''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